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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정의

by #*$% 2020. 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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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정의

소설의 정의

소설이란 무엇이냐 하는 물음에는 그리스의 서사시 시대 이후 인생의 서사시인 근대소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대답이 되풀이 되었지만 완벽한 해답은 하나도 없습니다. 소설은 들이나 나무와 같이 고정된 물체가 아니라 정신적 산물이므로 작가의 인생관과 문학관, 사회와 시대의 변천과 더불어 항상 변화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소설(小說)의 小는 작다는 뜻이고, 說은 어떤 고정된 난제를 서서히 풀어서 분해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소설은 어원적으로 어떤 고정된 난제를 작게 풀어낸 이야기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양에서는 장자 외물편에 소설이라는 말이 보이고 반고의 한서 예문지에는 '소설가란 대개 패관에서 나온 것으로 길거리의 얘기와 항간에 떠도는 말과 거리에 돌아다니는 뜬소문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규보의 저서 백운소설에서 소설이라는 말이 사용되었으나 이 저서는 일종의 잡록에 지나지 않으므로 장르상으로는 수필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조선조 중종 때 어숙권(漁叔權)은 우리나라에 소설이 적다고 하면서 이인로의 파한집(破閑集), 최자의 보한집(補閑集), 김시습의 금오신화, 성현의 용재총화 등을 소설로 들고 있는데 수필과 소설의 장르적 구별이 거의 없이 혼용되고 있습니다. 이 밖에 정종실록 권36에는 패관소설, 서포만필에서는 통속소설, 송남잡식에서는 연의소설이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본다면, 조선조에 와서는 소설이라는 말의 사용이 거의 보편화되고 있음을 알게 되지만 그러나 근대적 의미의 개념이 확립된 것은 아닙니다.

 

소설이라는 말의 근대적 개념은 개화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해조의 신소설 '화(花)의 혈(血)'의 서언에서 '무릇 소설은 태제가 여러가지라'는 말이 보이고, 소설이라는 말은 개화기부터 비로소 유럽의 근대적 개념을 갖게된 것으로 보입니다.

 

영어의 novel은 소설로 번역되고 있으나 이 말의 이탈리아어 노벨라(novella)는 소설 또는 단편소설로 번역됩니다. 영어의 novel은 이탈리아어에서 진화된 것이며, 이탈리아어는 라틴어의 노부스(novus), 그리스어의 노에스(noes)에서 형성된 말인데, 새로운(new)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로망(roman) 또는 로만스(romance)라는 말은 장편소설을 의미합니다. 중세때부터 이 명칭이 생겼으나 이 때는 로마의 공용어인 라틴어가 아닌 남유럽 전역에서 스이고 있는 언어를 가리키는데 처음에는 작품이 씌어진 로망이 그 자체를 의미하다가 다시 로망어로 스여진 작품으로, 다시 장편소설이라는 의미로 발전했습니다. 지금도 프랑스에서는 장편소설을 로망이라고 합니다. 이 밖에 콩트(conte), 픽션(fiction), 스토리(story) 등의 말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콩트는 단편 또는 엽편소설을, 픽션은 허구를, 스토리는 history와 같은 어원임을 나타냅니다. 소설을 의미하는 이러한 다양한 명칭의 존재는 소설 장르의 복잡성을 암시할 뿐만 아니라 그 정의의 어려움도 말해주고 있습니다.

소설에 대한 기존의 정의를 검토하거나 새로운 정의를 시도하기 위해서는 정의의 관점이 먼저 설정되어야 합니다. 관점의 설정은 각자의 인생관이나 세계관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므로 논자에 따라 다르겠지만 문학 일반론에서 이미 말한 바 있는 M.H. 에이브럼즈의 이론을 여기에서 응용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입니다. 이미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에이브럼즈는 문학의 상황을 구성하는 요소로서 예술가(artist), 세계(universe), 작품(work) 및 독자(audience)를 들고, 이 네 요소를 네 가지의 기본적인 문학 이론인 표현론, 모방론, 객관론, 실용론을 형성하는 좌표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소설에 대한 정의에 대해서도 이 네 좌표를 기준으로 검토하거나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

 

소설에 대한 정의의 초점을 일단 예술가 즉 '소설가'(작가)에 두면, 소설이 창작되는 근원도 소설가 자신에게 있다고 본다. 노만주의 문학을 이론적으로 확립하려고 한 독일의 실레겔은 "뛰어난 소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것은 다소간에 은폐된 자기 고백에 불과하며, 자기 경험의 수익, 자기 특질의 정수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당신은 쉽게 생각해 내며 확신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표현론 즉, 노만주의적 관점에서의 소설을 소설가 자신의 인생 체험이나 내면 세계의 표현이라고 해서 큰 잘못은 없다고 봅니다.

 

어떤 예술이든 그것이 작가의 창조물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소설이 소설가의 자기 표현이라 함은 소설이 작가의 창조물이라는 의미로만 정의한 것은 아닙니다. 소설 창작에 있어서 소설가가 관여하는 기능은 자기의 인생 체험, 그 체험에 대한 감동 또는 내적 체험, 그 체험의 표현 충동, 언어에 의하여 소설 형식으로 표현하는 활동으로 세분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능적 활동을 통해서 소설가의 인간적, 예술가적 전체가 관여하고 작용합니다. 그러나 소설을 소설가 자신의 고백이라고 함은 여기서 더 나아가 소설 창작의 근원적인 원인이나 추진력이 소설가의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소설가 자신의 내면 세계에 있으며, 작품을 결정하고 판단하는 가치 기준 역시 자신의 내면 세계에 있다는 주관주의적 확신에 의거합니다. M.H.에이브럼즈는 "예술가 자신이 산출과 그것을 판단하는 기준을 모두 생산하는 주요 요소가 된다는 사고 방법을 나는 예술의 표현론이라고 하겠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시선을 소설가에서 작품의 바깥에 있는 세계나 사회로 돌리면, 소설은 세계나 사회의 모방(mimesis), 반영(reflection), 재현(representation)이라는 개념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스에서는 모든 예술을 모방 양식으로 보았다는 것은 이미 다 알것입니다. 이 개념은 르네상스를 거쳐 근대 리얼리즘 소설에서는 소설을 당대 상회 현실의 객관적 묘사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마치 카메라로 풍경을 촬영하듯이 그렇게 복사하는 것은 소설, 특히 리얼리즘 소설의 본질이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헝가리의 문학자인 루카치는 사회모순의 극복과 사회의 변혁에 리얼리즘의 참뜻이 있다고 보고, 현실을 보다 충실하고 보다 완벽하고 더욱 생생하게, 그리고 더욱 다이내믹하게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루카치는 모방이라고 하지않고 반영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지만 모방에서 반영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그리고 장구한 작품의 역사와 이론적 맥락의 역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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